초당 94프레임, 즉 실제 움직임의 4배 느린 속도로 촬영된 이 어마어마한 영화의 주인공은 물(water) 자체이다. 세계에서 가장 깊고 오랜 호수인 바이칼호의 충격적인 장면에서 시작해서 허리케인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마이애미를 거쳐,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폭포인 베네수엘라의 앙헬 폭포에서 장엄한 여행을 마치는 이 현기증 나는 영상에서 우리는 압도적인 물과 얼음의 향연 속에 이끌려 들어간다. 영화는 서사도, 내레이션도, 특별한 맥락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저 때로는 장대하고, 때로는 아름다우며, 때로는 두려운 물의 다양한 이미지와 사운드의 폭격 속에 90분간 잠겨있다 보면, 자연의 엄청난 힘과 대조적으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자연스럽게 깨달을 뿐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그 어떤 장광설보다 효과적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설파하는 빅토르 코사코프스키의 역작이다.
(2019년 제16회 서울환경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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